제주조천 북촌마을 2018-01-17T22:42:13+00:00

제주조천 북촌마을

북촌은 제주시 조천읍 동쪽 끝에 자리 잡은 해변마을이다. 포구를 중심으로 ‘본동’, 서쪽에 서우봉과 접한 ‘해동’, 남쪽 선흘리 방향 중산간에 ‘억수동’ 이 있으며, 1990년대에 ‘한사동’이 새로 조성되어 지금은 4개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북촌 너븐숭이 4·3기념관

1949년 1월 17일, 북촌초등학교 서쪽 고갯길에서 무장대의 기습으로 군인 2명이 피살되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북촌마을에 들어온 토벌대가 마을 주민 300여명을 대학살한 장소로 2009년 위령 제단과 북촌4·3기념관 및 위령탑이 설치되었으며 북촌리 사건을 소재로 하여 쓰여진 현기영의 소설‘순이삼촌’의 문학비도 여기에 세워져 있다.

서우봉 일제 진지동굴과 몬주기알(4·3희생터)

서우봉은 서산봉(서모)으로도 불리며, 봉우리를 기점으로 동쪽은 북촌리 서쪽은 함덕리이다. 북촌에 속한 오름 동쪽 면적이 서우봉 전체의 3/4을 차지한다.
■ 진지동굴(등록문화재 제309호) 서우봉 해안에는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20여개의 진지동굴이 있다. 이곳에서 가장 가까운 진지동굴은 입구가 3개인데 내부가 연결된 ‘ㅌ’자형으로 마을사람들은 ‘삼형제굴’이라고도 한다. 180m 정도 올라가면 오른쪽으로 진입로가 있으며, 진입로에서 30m정도 들어가면 진지동굴들을 볼 수 있다.
■ 몬주기알 서우봉 정상에서 바닷가로 향한 해안절벽을 말한다. 절벽 아래에는 입구는 작지만 내부가 비교적 넓은 천연동굴이 있어, 4·3당시 북촌주민들 뿐만 아니라 함덕주민들도 숨었던 장소이다. 썰물일 때 해안가로 접근이 가능하다. 토벌대의 작전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인 1948년 12월 26일경 4~5명의 여성들이 절벽 위에서 총살당하는 등 많은 주민들이 희생당한 곳이다.

북촌포구(4·3역사현장)

1948년 6월 16일 우도에서 출발하여 제주읍으로 향하던 한 척의 배가 갑자기 몰아친 풍랑 때문에 북촌포구로 뱃머리를 돌렸는데 이 배에는 우도지서장과 순경을 포함한 가족 13명이 동승하고 있었다. 당시 지서장은 북촌포구에 들어서면서 고기떼를 향해 총을 쏘았는데 이 총소리를 듣고 접근한 무장대에 의해 경찰 2명이 희생되었다.

낸시빌레(4·3학살현장)

이곳은 1948년 12월 16일 북촌마을 청년 24명이 당시 함덕 주둔 2연대 3대대 군인들에 의해 학살당한 곳이다. 1948년 12월 경, 마을주민들은 토벌대로부터 ‘자수하면 살려준다. 무장대에 협조를 했던 안했던 군부대에 자수하면 양민으로 살게 해준다.’는 말을 들었다. 이 말을 믿고, 마을 주변에 피신해 있던 주민들과 민보단에 들어가 토벌대에 협력하던 주민들 40여명이 함덕의 대대본부로 갔다. 그런데 그 중 24명이 북촌리와 동복리 경계에 있는 낸시빌레에서 총살당하였던 것이다. 이유는 1948년 5월 10일 총선거에 불참했다는 것이었다. 낸시는 냉이의 제주어로, 낸시빌레는 냉이가 많이 나는 곳을 말한다.

꿩동산(4·3역사현장)

1949년 2월 4일 구좌중앙국민학교에 주둔한 2연대 3대대 11중대는 군 트럭 2대에 군인 20여명을 태우고 일본99식 총 150정을 수송하기 위해 함덕 대대본부로 향했다. 군 트럭이 이곳 꿩동산에 이르자 매복해 있던 무장대가 습격하였다. 이 습격으로 군인 15명이 죽고 2명이 부상을 당했으며 경찰 1명과 주민 1명도 죽었다. 무기도 모두 무장대에 탈취당하였다. 무장대는 1명이 죽었다. 당시 이곳은 가파른 동산에 소나무가 가득했으나 20여 년 전 일주도로 확장공사로 천연자연림이 많이 훼손되어 당시 흔적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서쪽의 너븐숭이와 함께 북촌마을의 상징적 4·3역사현장이다.

마당궤(4·3은신처)

이곳은 4·3 당시 북촌마을 주민들이 숨었던 은신처이다. 북촌포구 경찰관 피습사건으로 토벌대의 수색이 강화된 1948년 6월 22일, 이곳 ‘마당궤’에 숨어있던 북촌마을 청년 9명이 발각되어 제주경찰서에 연행된 곳이다. 이들은 이후 육지형무소로 보내졌다. 그날 수색은 경찰과 미군이 같이 참여했는데 미군(4명)은 사복을 입고 있었다.

당팟(4·3희생터)

1949년 1월 17일 북촌학살 때 북촌국민학교 운동장에 모인 북촌주민들은 군인들에 의해 이곳 ‘당팟’으로 끌려왔다. 군인들은 주민들을 이곳으로 끌고 오자마자 곧바로 총살했다. 당시 북촌학살은 북촌국민학교를 중심으로 동쪽의 ‘당팟’과 서쪽의 ‘너븐숭이’로 나누어 이루어졌고 이곳 ‘당팟’에서는 100여 명이 희생되었다.

정지퐁낭 기념비

이 곳은 정지퐁낭과 연못이 있어 조선시대 때 관리들이 쉬었다 가는 장소였다. 정지퐁낭은 수령 약 800년 된 팽나무로 마을의 정자 역할을 하였으나 1958년 9월 태풍 ‘사라’호에 의해 한쪽으로 쓰러지자 제거하고 다시 심었다. 이 나무 옆에 있는 제주목사 선정비에는 4·3사건 당시 총탄자국들이 선명히 남아 있다.